개인적인 비/이혜미
각자의 지붕 아래에서 맞닿았지. 품속의 작은 단도들 이 차르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 세계의 그림자를 짚 어내며 빛을 빚는 비. 묽은 촛불들을 곳곳에 사르며 사 라지는 비. 비는 옮아가는 질병인가. 휘몰아치는 눈썹들인가. 갈 피를 놓친 낱장들인가. 검은 반지를 깨트리고 빠져나오 는 반투명의 손가락들. 오늘은 약속을 팽개친 손들 이 아주 많아. 겹쳐지며 각자를 밀어내는 지붕 밑에서. 우산마다 소 분(小分)하여 보관하던 하루치의 강수량을 꺼내 펼치 면 그곳은 나의 영토이지 너의 시간이 아니야. 너의 다 정, 너의 귀가, 너의 얼룩진 셔츠 소매 사이로 흘러나오 는 희고 무른 손가락들. 우리는 아름답게 걷는다. 근사하지만 하나는 아니 야. 우산이 언제나 피보다 느리듯 생각은 늘 피보다 느 리고. ..
2020.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