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백석

2021. 3. 8. 22:45*/poetry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은 구수한 즐거움에 싸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 녚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로밤 뽀오햔 흰 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녯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

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든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

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녯적 큰마니가

  또 그 짚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 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녯적 큰아바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

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

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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