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3. 8. 09:43ㆍ*/poetry
당신은 오늘도 구립 도서관의 같은 자리에 앉아 있더군. 당신은 오늘 생각했다. 공부가 노동이 되고 문학이 상품이 되어버린 현실을. 야근하듯 읽고 쓰다 자기의 공부와 문학으로부터 소외돼도 파업할 수도 없는 현실을. 파업해도 당신 말곤 아무도 타격받지 않을 현실을. 당신은 첫사랑의 두근거림을 잊어버린 권태기의 부부처럼 책임감으로 책을 읽고 의무방어처럼 시를 쓰고 있었지. 권태기 이후의 사랑에 관해, 그 피로의 미덕에 관해 당신은 미처 생각지 않은 듯하더군. 첫사랑의 두근거림을 재연하려 당신은 다른 책들을 열심히 들추어보았지. 어쩐 일인지 두근거리지 않았어. 심장의 불수의근이 만족할 만한 해답을 여기저기 찾아다녔지만, 이제 두근거릴 때라곤 죄지을 때 뿐. 그래서 당신은 거짓말을 시작했다. 남들을 두근거리게 할 만한 거짓말을. 뭐 어때, 그래도 재밌잖아, 라고 당신은 속으로 중얼거렸지. 재미가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당신은 몰랐다. 당신은 당신을 감시할 수 없었으니까. 당신은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 손쉬운 방법으로 옆 사람의 불성실과 위선을 고발하더군. 드라마 주인공으로 사는 일은 지루할 틈이 없는 일. 극적으로 위대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당신은 몰랐다. 거듭 자기의 거대함을 증명하기 위해 두근거리는 일들을 저지르는 건 방화범들의 특기. 안타깝게도, 이제 곧 당신은 무슨 짓을 저질러도 두근거리지 않을 것이다. 어쩌나. 요절하기에도 전향하기에도 늦은 나이. 당신은 기억할 수도 없는 어느 젊은 날에, 세상으로부터 잊혀지기 두려워 자기 자신을 영원히 잊어버리기로 서서히 결심해버렸던 것이다. 충분히 고독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독 속에서만 가능한, 영혼을 보살피는 일에 등한했기 때문에. 그 작고 여리고 파닥거리는 나비처럼 엷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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