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임솔아
2018. 12. 22. 23:54ㆍ*/poetry
잊고 있던 꽃무늬 원피스가 잡혔다.
어떻게 이런 걸 입고 다녔을까 의아해하다
의아한 옷들을 꺼내 입어보았다.
죽어버리겠다며 식칼을 찾아 들었는데
내 손에 주걱이 잡혀 있던 것처럼
그 주걱으로 밥을 퍼먹던 것처럼
밥 먹었냐, 엄마의 안부 전화를 끊고 나면
밥 말고 다른 얘기가 하고 싶어진다.
나는 이제 아무거나 잘 먹는다.
잊지 않으려고 포스트잇에 적었지만
검은콩, 면봉, 펑크린, 8일 3시 새절역, 33만원 월세 입금,
포스트잇을 어디에 두었는지 잊었다.
까맣게 잊어버린 검은콩이 냉장고에 있었다.
썩은 내를 풍기는 검은콩엔 왜 싹이 돋아 있는지.
이렇게 달콤한데, 중얼거리며
곰팡이 낀 잼을 식빵에 발라 먹던 엄마처럼
이렇게 멀쩡한데, 중얼거리며
유통기한 지난 우유를 벌컥벌컥 마시던 엄마처럼
죽고 싶다는 말이 솟구칠 때마다
밥을 퍼서 입에 넣었다.
엄마도 나처럼 주걱을 잡았을 것이다.
눈을 뜨자마자 엄마는 매일 주걱부터 찾아야 했을 것이다.
밥맛은 어째서 잊힌 적이 없는지
꽃들의 모가지가 일제히
햇빛을 향해 비틀리고 있는지
경이로움은 어째서 징그러운지.
멈춰버린 시계를 또 차고 나왔다.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꽃 없는 꽃밭에 철퍼덕 앉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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