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8. 17. 17:21ㆍ*/scrap
부처. 깨달은 자.
석가모니는 불교의 교조, 즉 불교의 창시자이다. 석가모니는 산스크리트어 '샤카무니'를 중국에서 한자어로 음역한 것으로, 샤카는 그가 속하던 부족, 무니는 '성자'를 의미하므로 석가모니란 '샤카(석가)족의 성자'라는 뜻이다. 무니에는 고행자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다른 호칭으로는 세존, 석존, 불, 여래 등의 10가지가 있다. 서양에서는 흔히 고타마 붓다(Gautama Buddha)라고 칭한다. 일반적으로 붓다(부처님)로도 불린다.
본명은 싯다르타 고타마[8][9]로, 샤캬족의 소왕국인 카필라에서 '라자'[10] 슈도다나와 마야부인 사이에서 왕자로 태어났으나, 사방의 성문 밖, 즉 동문, 서문, 남문, 북문에서 각각 노인, 망자(또는 장례식), 병자, 수행자를 만나 인간의 생애가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생로병사)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벗어나는 것을 추구하여 결국 왕세자 지위를 버리고 출가. 많은 수도 끝에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인도 북부를 중심으로 가르침을 펼치고 많은 이들을 교화하다가 마지막 제자인 쑤밧다를 교화하고 80세의 나이로 열반에 들었다.
1. 일생
석가모니의 생몰년도는 옛 인도 기록이 불확실하여 정확히 답을 내기 어려우며, 단지 열반 당시 나이가 80세라는 점만 알 수 있다. 남방불교에서는 석가모니의 생몰년도를 기원전 624-기원전 544년으로 보며, 북방불교에서는 기원전 1026-기원전 949년으로 보아, 그 차이가 대단히 크다. 학자들의 연구에서는 기원전 560-기원전 480년 / 기원전 460- 기원전 380년 설이 있다.
인간이되 인간을 초월한 존재라 그런지 얽힌 전설 및 일화도 가지각색이다. 우선 어머니 마야 부인이 인도에서 신성시되는 흰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임신했다.[11] 마야 부인은 당시 인도 풍습에 따라 출산을 위해 친정으로 향했는데, 도중에 룸비니 동산[12]에서 탐스러운 무우수 나무를 향해 손을 뻗다가 산기를 느끼고 그곳에서 산실을 차렸다. 석가모니는 마야 부인의 겨드랑이로 나와(…)[13], 육방, 혹은 팔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천상천하 유아독존'[14]이라고 외친다. 하지만 마야 부인은 출산 7일 뒤 숨을 거두고 만다.
그가 태어나고 난 후에 아버지인 정반왕이 예언자 아시타 성인에게 예언을 들었는데, 만약 궁정에서 그대로 자란다면 전륜성왕이 되고, 출가한다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다는 말도 들었다. 고타마 싯다르타의 이모인 마하파자파티가 고타마를 돌봤으며 아버지는 왕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그에게 바깥을 잘 안 보여주고 궁정에서만 호화롭게 자라게 했지만, 알다시피 몰래 바깥을 경험한 싯다르타는 뭇 삶(중생)들의 괴로움을 보고 출가를 결심한다.
다른 일화로는 젊어서는 무예에 통달하여[15] 무술대회에서 사촌 데바닷타나 아난다 같은 강무자를 물리치고 우승했으며, 성난 코끼리를 잘 달래서 집으로 돌려보냈을 만큼 평정심을 유지하는 경지 또한 매우 원숙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 외의 기록에서 부처의 경지에 이른 뒤, 다치거나 몸에 이상이 온 사례가 있는데, 데바닷타[16]가 갑자기 돌을 벼랑 위에서 굴려 석가모니를 죽이려 했을 때 이를 피하다 튄 돌에 발가락을 맞았을 때와[17] 열반 직전에 대장장이 순타가 '수까라 맛다와'라는 음식을 공양했는데, 이를 먹고 식중독 비슷한 증세를 보인 정도다.[18]
최후에 열반한 후 다비를 거행하였을 때, 사리가 무려 8섬 4말이 나와 당시 석가모니를 조문하러 온 8부족 왕들이 한 바라문의 조정에 따라 나눠 가졌다고 한다.[19] 뒤늦게 온 한 나라는 남은 재를 가져갔고, 조정을 맡은 바라문은 사리가 들어있던 병을 가지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2. 사상
그의 사상의 위대함은 역시 인류가 혹독한 삶으로 고통받는 근본 원인을 진단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였다는 데 있다. 그 가르침이 바로 불경이며, 이는 후대에 그를 따른 수많은 이들에 의해 정립되고 확장되었다.[21]
석가모니는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허덕이는 중생들을 교화하고 제도하였다. 이 과정에서 신성, 위엄, 절대의 모습보단, 제자에게 신통력을 내보이지 말고[22] 수행에 정진하라고 가르치는 등 인간적인 면모가 강하다.
당시 인도는 수많은 종교와 수많은 사상들이 혼잡하게 있어서 어떤 것이 진리인지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석가모니는 많은 질문들을 받았는데 이들 사이의 대화내용이 결국 불교의 경전이 된다. 대화 내용 중에는 민감한 내용을 직설적으로 물어보거나 석가모니를 테스트하기 위한 질문도 많았다. 석가모니는 일관적으로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깨우치는 것을 설하였다.
역사학적으로 따자보자면, 석가모니는 그 당시 브라만교의 카스트에 반대한 인간 평등을 주장한 식자에 가깝다. 브라만교의 후신인 힌두교는 불가촉천민을 포함해서 5단계로 계급을 나누고, 전생에 업(카르마)를 져서 현세에 이런 걸로 태어난 것이라는 사상을 주장한다. 그러니 내가 현생에 그 계급에 맞는 일을 열심히 하면 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는 지금 계급이 아닌 더 높은 계급으로 환생한다든지 브라만(바라문)으로 환생할 수가 있다고 가르쳤다. 인도의 지배층은 이 힌두교의 가르침을 널리 설파해 하위계급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었고 현대에도 이러한 문화는 인도에 뿌리깊이 박혀 있다.[24]
그런데, 석가모니는 카스트 제도를 강력히 반대하고 현세의 계급에 상관없이 수행을 함으로써 여성이나 천민 등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25] 삶의 끝없는 고통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고 설파한 것이었다. 이 파격적인 내용 때문에 일부 권력자들의 열성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아쇼카왕 이후의 인도에서는 타 종교의 요소들을 받아들인 힌두교가 세를 급격히 불려 민중들을 적극 공략해 인도의 사상의 대세를 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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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염세주의의 대부인 쇼펜하우어는 칸트와 인도철학의 기반에서 자신의 사상을 만든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의 근본은 자연을 신으로 보는 범신론적 사상이며, 불교가 기반이 되는 부분이 많다. 문제는 상당히 왜곡해서 이해했다는 거. 뭘 어떻게 착각했는지 쇼펜하우어는 불교를 허무의 종교로 봤다.[38][39] 그리고 이러한 쇼펜하우어의 불교관은 현대에까지 불교에 대한 상당한 오해와 편견을 남겼다.[40] 쇼펜하우어의 불교관에서 공통분모가 있다면 집착하지 말라는 것. 하지만 불교에서 집착하지 말라는 것은 "맹목적으로 매달리지 말라"는 것이지 "어차피 허무하니 매달리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ㅡ부처란 Buddha, 즉 '깨달은 자'의 통칭이다. 그러므로 석가모니불과 불교가 탄생하기 전에도 부처님은 존재했고, 그 뒤로도 누구든 부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등의 불교 문화권에서 일반적으로 부처님이라 하면 이 석가모니불을 가리키며, 절의 대웅전에 있는 불상은 석가모니불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고 다른 대상일 수도 있다. 모든 성당의 예수상이 예수 한 존재를 표현한 것과는 다른 점이다.
ㅡ불교에 나오는 모든 말도 안 되는 초능력은 무언가를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예들 들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동쪽으로 일곱 걸음 걸어가서 '천상천하유아독존 삼계개고아당안지'(하늘 위 하늘 아래 내가(=모두가) 제일 존귀하다. 온 세상이 괴로움이니 내가 이를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를 외쳤다 하는 설은 태어자나마자 7발자국을 걸어갔다는 6도윤회에서 벗어나 해탈하실 분을 뜻하며 천상천하를 외친 것은 원래 부처님이 되실 분이셨다를 뜻한다.
출처:
https://namu.wiki/w/%EB%B6%93%EB%8B%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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