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힙의 나라에 산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군요

2018. 11. 25. 23:36*/scrap

약속 장소로 잡은 동네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면 자연스레 인스타그램을 켠다. #성수동맛집 #연남동카페 그런 식으로. 그곳에 도착하면, 언젠가 한 번쯤 인스타그램에서 본 적 있는 것 같은 공간에, 역시나 비슷한 방법을 통해 찾아온 듯한 사람들이 와글와글 모여 있다.

그 순간에도 카페의 분위기는 똑같은 구도에 사람만 바꿔가며 부지런히 인스타그램 피드로 전송되는 중이다. 예쁜 것도 힙한 것도 맞지만 마음 한편으로 의아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정말 같은 취향으로 이걸 좋아하나? 아니, 나는 정말 이게 좋아서 여기 온 게 맞나?

가끔은 인스타그램용 사각 프레임이 전부인 카페에 가서 속았다는 기분마저 느낀다. 앉으라고 만든 건지 사진만 찍고 얼른 일어나라는 소리인지 알 수 없는 불편한 의자, 단순히 인테리어용으로 가져다 놓은 듯한 키 큰 화분들, 주인조차 어떻게 키우는지 몰라 시들어 가는 식물과, 비슷한 곳을 돌아다니며 베껴 온 듯한 소품들…. 그런 곳에서 느끼는 피로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진짜가 아닌 것들이 진짜처럼 취향과 유행을 타고 있기 때문일까. 모두가 몰려들어 같은 것에 환호하는 소란함 때문일까.

하지만 그걸 탓할 수만도 없는 게, 나 역시 같은 방법으로 카페와 맛집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멋지다고, 예쁘다고, 힙하다고 그런 곳을 찾아가고 또 인증하는 사람들이 창출하는 수요가 어딘가에 또다시 비슷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럼 우린 좋은 곳이 생겼다며 또 새로운 카페를 방문하겠지. 이것이 바로 힙의 무한 루프…. 그래서 우리는 하루가 멀다하고 골목마다 비슷한 분위기의 카페들이 생겨나는 초고속 힙의 나라에 살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비단 카페 취향을 말하려는 것만은 아니다. 가끔은 내가 내 삶을 사는 게 아니라, 남들처럼 살려고 흉내 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남들이 가는 곳에 꼭 가야 하고, 남들이 보는 것은 꼭 봐야 하고, 남들이 이룬 성취를 따라 좇아야 한다 여기면서. 그런 곳에 가서 정말 오고 싶어 온 척하고, 취향에 맞는 작품인 척하고, 내가 원하는 삶인 척하면서. 대체 언제부터 남의 것을 좇는 것밖에는 사는 방법을 모르게 된 걸까.

어렸을 땐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일단 남들을 따라 뛰었다. 정신 차려 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한 방향을 향해 뛰고 있길래 덩달아 그 흐름에 끼었다. 마트 타임 세일을 놓치지 않으려는 자취생처럼. 나는 덩치도 작고 뒤쪽에 있어서 도무지 그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많은 사람이 좇고 있으니까 당연히 좋은 게 아닐까? 그렇게 여겼을 뿐이다.

그때 나는 아주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설령 그렇게 쫓아가 만난 것이 좋은 것일지라도, 남이 좋다고 하는 게 반드시 나한테도 좋진 않을 수 있다는 걸. 입맛이 그렇고, 옷 취향이 그렇듯, 산다는 거창한 일도 그냥 내가 느끼는 게 더 중요한 영역일 뿐이었는데.

그런 생각을 해서인지 요즘엔 친구와 얘기를 나누다가도 문득, 자려고 누웠다가도 문득 ‘자기 중심’이란 말을 떠올린다. 자기 중심이란 건 대체 어디 가야 살 수 있는 것일까?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레 어렸을 때보다 중심 잡힌 사람이, 자아가 단단한 사람이 될 줄 알았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 자아란 건 왜 이렇게 물러빠진 건지 깜짝 깜짝 놀랄 때가 더 많다. 아, 내가 뭔지도 모르면서 남들 따라 이걸 좋아하는 척했네. 아, 내가 지금 저 사람이 되고 싶어 했네…. 이때쯤 되면 어떤 상황에서든 단단한 목소리로 내 의견을 얘기하고, 흔들림 없이 나다운 라이프스타일을 고수할 줄 알았건만 나는 여전히 남들을 기웃댈 뿐이다. 그게 안전하니까. 뒤처지지 않고 소외되지 않으며 n번째 무난한 인생에 편입될 수 있으니까.

​그러니 이렇게 사는 우리 앞에 어느 날 홀연히 산신령이 나타나 금도끼 은도끼를 묻듯이 이 취향이 네 취향이냐? 이 꿈이 정녕 네 꿈이냐? 묻는다면 우리는 우물쭈물 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하기에도, 아니라도 하기에도 애매하므로. 그렇다 하기엔 남의 것 같고, 아니라 하기엔 어쩐지 내 것 같기도 한 이상한 욕망과 취향. 내가 진짜를 알아볼 수 있을까? 선량한 나무꾼처럼 자신에게 정직한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자기 중심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한 생의 과제일지 모른다 생각하는 요즘엔 무엇을 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자꾸 묻는다. 이게 정말 네가 원하는 거야? 너는 정말 이게 좋아? 남들이 좋다고 말해서가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좋다고 느끼고 있어? 이걸 할 때 행복해? 이걸 정말 갖고 싶어? 그 질문에 똑부러지게 대답할 수 있을 때도, 아닐 때도 있지만 어쨌든 질문이 중요하다고 여기면서.

그건 사실 어디 가서 돈 주고 자기 중심을 살 수도 없는 우리에게 더 많은 상황에서 필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부모님이 바라는 인생을 내가 바라는 것인 양 착각하고 살고 있진 않나? 내 삶인데도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지나치게 의식하며 행동하는 건 아닐까? 내가 진심으로 바란 적도 없는 것들 때문에 애쓰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있진 않나?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나 자신을 믿을 생각은 않고, 무턱대고 타인부터 믿어온 건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서 일단 남의 기분, 남의 느낌, 남의 목소리부터 좇아온 탓에 스스로 느끼는 법을 잊어버린 건지도.

어렵지 않다. 내가 느끼는 것, 내 기분, 내 생각이 곧 나다. 내가 좋다고 느끼는 것만이 진짜 좋은 것이고, 나머지는 사실 ‘내게는’ 의미 없는 것들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좀 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 우린 결코 해시태그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존재들이니까. 인스타그램 바깥에 있는 마냥 멋지지도 근사하지도 않은 삶이 진짜 내가 발 붙이고 살아갈 땅이니까.


[868호 – think]
대학내일 김신지editor


출처:
https://univ20.com/926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