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7. 10. 10:22ㆍ*/scrap
ㅡ얼마 전 우울감을 겪으며 알게 되었다. 행복이란 얼마큼 행복한 일들이 내게 일어날까, 라는 객관적인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큼 내가 그것을 행복으로 느낄 수 있을까, 라는 주관적인 마음의 상태로 결정된다는 것을. 이제는 행복감을 느끼는 일이 안일한 위로를 향한 도피가 아닌 엄청난 재능임을 안다. 그것은 사실 이것이 있어서 행복하다가 아니라, 이것이 없어도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ㅡ욕망을 충족하는 것과 감정적으로 행복해지는 것은 비슷한 듯 엄연히 다른 성질을 지녔다. 특정 조건들을 갖추느냐 마느냐와 상관없이, 내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기질은 별도의 독립적 성질이다. 행복과 욕망은 옆에서 각자 따로 평행선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는 것과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다른 축의 문제이기에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욕망을 포기하고 주어진 현실에 만족해야 한다’라는 흔히 듣는 겸손한 말은 맞지 않다.
행복과 욕망은 각자 독립적으로 존재하기에 둘을 혼동하거나 섞지 말고, 갈라놓은 뒤 저마다의 방식으로 충족하면 된다.
ㅡ욕망과 행복은 둘 다 인간이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욕망은 욕망대로 최대한 노력해서 추구하는 근력도 필요하고 행복은 행복대로 너그럽게 감지하는 촉도 필요하다. 다시 말해, 욕망을 위해 행복을 포기할 필요도, 행복해지기 위해 욕망을 포기할 필요도 없다.
ㅡ솔직함이란 감정에 따라 일어난 생각을 숨기지 않고, 타인을 의식하지 않으며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성향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평소 좋은 마음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왔고 그로 인한 자신의 선한 의지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한 의지를 바탕으로 한 솔직함은 사람과 사람을 보다 깊은 곳에서 연결해준다. ‘아, 나만 이런 이상한 생각을 한 건 아니었구나.’ 상대로부터 제대로 이해받고 있다고 느낄 때 드는 안도감과 충족감. 그런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는 서로에게 깊은 친밀감을 가진다.
ㅡ알랭 드 보통이나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남성 작가들의 연애소설(가령 알랭 드 보통의 『사랑의 기초 : 한 남자』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도 읽지만 이들은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 비해 담백하고 분석적인 편이다. 연애 감정의 결을 짙게 느끼기 위해서는 여성 작가들의 소설이 더 적절하다. 책의 아무 페이지나 무심코 펼쳐서 읽는다. 연애 감도를 올리기 위해 읽는 소설은 보통 에쿠니 가오리의 『잡동사니』와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이다.
ㅡ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작품에서는 에쿠니 가오리나 아니 에르노의 작품처럼 달뜬 감정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기 자신의 감정을 제3자의 시선으로 세밀하게 관찰하는 것처럼,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로 사랑의 감정이 서서히 깊어지는 모습을 서늘하게 그려낸다.
ㅡ솔직함은 글쓰기를 장기적으로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글을 통해 나를 치장하고 포장하거나 가면을 쓰기 시작하면 거짓말은 점점 더 부풀 수밖에 없기에 어느덧 스스로도 자아와 글 사이의 괴리를 느껴 글쓰기는 고통이 되어간다. 그리고 사람은 고통을 받아가면서까지 글을 쓸 이유는 없다. 간절히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자기 검열이나 자의식을 떨쳐내고 오로지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만으로 써야 한다. 내가 혹시 어떤 내용을 얼버무리고 있지는 않은지, 어떤 내용을 말하기 두려워하는 게 아닌지 돌아보며 정직해질 필요가 있다. ‘나답게’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나를 의식하지 않고 쓰는 일이다.
ㅡ이별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그 사람이 나를 가장 사랑했던 시절의 모습만을 선택적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 황홀감을 포기하고 싶지 않고 어쩌면 그 마음의 일부가 여전히 그 사람 속에 남아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내가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그 사람은 이제 더 이상 현실에존재하지 않는다. 몹시 슬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받아들이고 추스르고 다시 내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ㅡ하지만 대부분의 것들은 시간이 해결해준다. 세상에는 시간이 어느 정도 경과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있는 것이다. 혹은, 세상에는 시간만이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긴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스스로가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싫은 것은 아닌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시간이 이별의 고통을 해결해주기를 기다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몸을 움직여보는 것. 일상을 지켜나가는 것. 평소대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것. 이런 행동들은 나를 추스르고 중화시키는 역할을 하면서 이별의 고통을 서서히 극복할 수 있게 돕는다. 시간을 아군 삼아 버티는 일이 상처 입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이다. 그러는 동안 비는 언젠가는 반드시 그친다.
ㅡ피곤한 것이 싫기도 하다. 인간관계만큼은 영혼 없이 관리하고 싶지 않다. 형식적으로 부피만 커져가는 친분과 인맥은 삶을 성가시고 산만하게 할 뿐이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만족스럽지 못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느니 그 시간에 혼자 책을 읽는 게 낫다.
ㅡ이해심이 깊고, 포용력이 있고, 입이 무겁고, 편견에서 자유로우며, 인생 경험이 많다. 나이와 상관없이 정신적으로 어른인 사람들이다. 내가 만나본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대부분 독립적인 개인이었고, 자신의 소신이 있는 만큼 타인의 다양한 생각을 존중할 줄 아는 유연한 자유주의자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그 존재만으로도 든든하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들과의 만남은 어디까지나 양보다 질. 피상적이고 공허한 수다보다 본질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렇게 신뢰감과 친밀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는 일은 분명 행운이다. 그런 소중한 선물을 받기 위해서는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ㅡ자신이 아는 것들에 대해 쓰는 일.
줌파 라히리의 자연스럽고 선명한 표현 방식도 좋아한다. 그녀는 자신이 겪은 것과 아는 것을 그저 담담하게 물 흐르듯 써내려간다.
배경은 지글지글 햇볕이 뜨거운 인도, 후끈하고 습한 기운. 향신료 냄새가 진동할 것 같은 음식들, 결혼식 때 신부가 착용해야 하는 어마어마한 무게의 호화로운 장신구, 낯설고 이해 불가능한 가족의 전통 의식. 인도라는 나라에 관심 없던 나에게도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는데 그것은 그녀가 인도 문화의 이국성에 대해 과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단하고 속이 꽉 찬 사람들은 꾸미거나 과장할 필요가 없다.
ㅡ하지만 한 명의 평범한 독자가 어떤 작가를 마음속 깊이 좋아할 때는 노벨문학상을 포함, 영예로운 수상 경력이나 유력 매체의 추천은 의미를 상실한다. 개인적인 사랑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가 있을 뿐, 그것은 반드시 논리적이거나 합리적이지도 않다.
ㅡ그런 의미에서 마흔을 넘겨도 멋있는 사람이야말로 정말로 멋있는 사람이다. 젊었을 때 멋진 것은 어느 정도 젊음이 뒷받침해주어서 가능하지만 젊음이라는 도움 없이도 멋지다면 그것은 분명 하나의 가치 있는 성취다.
ㅡ운을 들여다보면 완전히 독립적인 성질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선 재능과 노력이 전제되어 있지 않다면 행운이 내게 찾아와도 그걸 잡을 힘이 없거나, 그것이 행운의 기회라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재능과 노력이 서로를 최대치로 상승시키며 앞으로 나아갈 때 나에게 강력한 기운이 생기며, 사람들은 그 긍정적인 기운에 저절로 이끌려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한다.
ㅡ트레이너는 내가 막판에 힘들어할 때마다 늘 이렇게 일러주었다. 괴롭다고 신음하며 겨우 해내는 마지막 대여섯 번의 운동 동작이 실질적으로 내 몸을 바꾼다고. 편하게 하던 대로만 운동하면 체력이나 근력의 현상 유지는 될지 몰라도 그 이상은 늘지 못한다고. 그러고 보면 인생의 다른 일도 마찬가지 아닌가. 편하고 익숙한 것들을 넘어 조금씩이라도 새로 도전하거나 무리하지 않는다면 현상 유지는 될지 몰라도 실력이 늘지 않는 이치와 같다. 지금의 나보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라고 단정 짓던 그 수준을 스스로의 힘으로 뛰어넘어야 한다.
ㅡ‘우리는 비굴하게 굴면서까지 제품을 팔 생각은 없다.’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애교를 부리거나 굽신거리지 않는 특유의 당당한 태도는 자아가 단단하지 못하면 불가능한 일이기에 당해낼 수가 없다. 고집불통에 까탈스러워 보이는데 이토록 매력적이라니.
ㅡ여성학자 정희진 선생이 쓴 <한겨레> 칼럼의 한 구절이 위로가 되어준다. “삶은 할 일로 채워지는 것이지 안정과 성취는 실상 존재하지 않는 관념이다.” 멈추고 만족하며 안주할 수 있는 지점은 애초에 어디에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곰곰이 다시 생각해보면 이제 와서 글을 쓰게 된 계기 따위, 작가의 출신 대학만큼이나 하등의 의미가 없었다. 계기가 그럴싸하게 들리지 않아도, 이쪽 일로 넘어오게 된 애초의 목적이 불순했더라도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지금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나의 페이스를 지켜가면서 조금이라도 더 깊은 글을 가급적 오래도록 써나가는 일, 오로지 그것만이 누가 뭐래도 설레는 일이기 때문이다.
ㅡ울창한 나무숲에 가려진 캠퍼스는 마치 세상에서 고립된 성지 같았다. 남학생들에 비해 수가 훨씬 적어 보이는 여학생들도 화장기 하나 없이 무거운 책을 씩씩하게 짊어지고 중앙도서관을 바삐 오갔다. 젊음은 아무 장식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본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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